내달 26일부터 강화된 'MDR' 제도 시행, '국제의료기기 임상지원센터' 역할 커져

김태훈 국제의료기기 임상지원센터장은 경제적 이유 등으로 ISO14155 기반 임상시험을 시도하지 못하는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사진= 고려대의료원 제공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내달 26일부터 유럽연합(EU) 의료기기 시장 진출이 까다로워지는 가운데 의료기기 임상시험 실시기관(ISO14155) 인증을 받은 고대의료원 ‘국제의료기기 임상지원센터(MedSH)’ 역할이 커지고 있다. 해외에 가지 않더라도 EU시장 기준에 맞춘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다만, 영세 업체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국내 의료기기 시장의 경우 현재 수출 주력 품목인 초음파, 치과재료 등 기기의 시장성이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이유 등으로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김태훈 센터장(고려대 의대 이비인후-두경부외과학교실 교수)은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임에도 많은 영세 업체들은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국가 발전과 국내 의료기기 산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인 만큼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안타까움을 호소하고 있다.

◇ 강화된 의료기기 규정 MDR 시행…‘ISO14155’ 기반 임상시험 제출 의무

김 센터장에 따르면, 오는 5월 26일부터 EU시장에 출시하고자 하는 의료기기는 강화된 의료기기법(MDR)을 반드시 준수해야 하고, CE인증(Conformite Europeen Mark) 지원 시 ISO14155 규격을 바탕으로 한 임상데이터를 필수로 제출해야 한다. 기존 유럽 의료기기 지침(MDD)보다 강화된 MDR제도는 지난 2010년 프랑스에서 발생한 공업용 실리콘 유방보형물 사건 이후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나오게 됐다.

그는 “당시 프랑스의 유방보형물 제조 회사에서 공업용 실리콘을 사용해 보형물을 제조‧판매했고, 30~40만명의 환자들이 발암 물질에 노출돼 논란이 된 바 있다. 유럽사회에서는 엄격한 규제 마련의 필요성에 공감했고, 2017년 논의를 거쳐 3년 후인 2020년 5월 26일 MDR 시행을 결정했다”며 “하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1년 유예되면서 내달부터 본격 시행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MDR 규정에 따라 EU시장 진출 시 ‘ISO14155’ 기반의 의료기기 임상시험 수행이 필수적”이라며 “수출 시장이 큰 EU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브라질, 호주, 일본, 중국, 러시아에서도 ‘ISO14155’ 기반 데이터를 인정하고 있어 규격에 맞춘 임상시험 실시가 불가피해졌다. 그간 국내 기업의 경우 이 규격에 맞는 임상데이터 제출을 위해서는 해외 임상시험이 불가피했지만 고대의료원이 ISO14155 인증을 받으면서 국내에서도 가능해졌다”고 부연했다.

의료원은 2018년 8월 독일의 인증기관인 TUV SUD와 업무협약(MOU)을 맺고, 이듬해 서면 평가와 실사 점검을 거쳐 9월 최종적으로 인증을 받았다. 유럽 내 ISO14155 기반 임상시험 실시기관의 경우 진료과목별로 인증을 받았던 반면, 센터는 세계 최초로 종합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으로서 ISO14155 인증을 획득해 세계적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임상지원~급여인정 이끌어

센터의 역할은 크게 인증관리 파트와 임상시험 지원파트로 구분된다. 관리 파트는 표준운영지침대로 임상시험 지원이 제대로 운영되는지 관리하고 교육하며, 3년 주기로 돌아오는 재평가 기준에 맞출 수 있도록 준비한다. 임상시험 지원파트는 실제 임상시험이 진행될 수 있도록 기업과 연구자를 매칭하고 컨설팅을 지원해 글로벌 시장 진출에 기여한다.

최근에는 센터에서 처음으로 ISO14155 기반으로 임상시험을 수행한 광유도 약물주입기기 ‘라이트인(Lightin)’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급여 목록 등재가 확정되기도 했다.

김 센터장은 “센터는 ISO14155 기반 국제기준 임상시험계획서 개발과 QMS(Quality Management Systems)등 컨설팅 서비스를 통해 적절한 연구자를 매칭하고 보다 안전하고 과학적인 임상시험 수행을 지원하고 있다”며 “기기 개발 과정에는 설계-연구-비임상-임상-인허가-보험등재-시장진출 단계가 있는데, 한국에서 시장진출 전 가장 어려운 단계가 보험등재다. 상당히 빠른 시일 안에 보험등재가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특히 처음부터 비급여가 아닌 급여 인증을 받았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결과”라고 밝혔다.

◇임상 시간‧비용 절감 기회, 영세 업체 지원 필요

하지만 김 센터장은 EU시장 진출에 있어 해외에 나가지 않고도 외국 시장에서 요구하는 임상시험을 진행할 수 있고,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회임에도 불구하고 업체의 영세성 때문에 접근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최근 K-방역이라고 해서 진단키트, 방역물품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 외에도 초음파, 임플란트, 기타 치과재료들이 수출 상위권에 있다. 이런 것들은 소규모 회사도 충분히 접근할 수 있고, 시장 진입 이후 경쟁력도 있다고 본다”면서도 “국내 의료기기 기업들과 접촉해보면 아이템이 상당히 좋고 수출 시 성공 가능성이 큰 제품들이 많은데 회사가 영세해서 임상시험을 시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 상황과 겹쳐서 중소기업들이 임상시험의 허들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2019년 기준 우리나라 의료기기 시장 규모가 세계 9~10위 정도인데 우리가 잘하고 있는 제품들을 띄워주고, 품목에 따른 맞춤형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세심한 지원책들이 절실하다. 정부나 지자체에서 중소기업을 지원해준다면 국가 발전과 의료기기 산업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수한 의료기기의 개발은 우리나라 산업 발전은 물론, 결국 환자에게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으로 이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국제적 기준에 맞춘 양질의 의료기기를 생산하는데 이바지하는 것이 센터의 목표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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